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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꾸던 스페인, 작은 설레임이 고통의 순간으로” 장거리 비행, 기내식, 바르셀로나의 밤

by urbanisy 2025. 6. 26.

2025년 3월 17일, 저는 인생 첫 유럽 여행을 떠났습니다. 목적지는 스페인 바르셀로나였습니다. 20대 때 같이 사회생활했던 언니와의 동행이었습니다. 우리는 미혼시절 여행후 결혼 하고서는 처음 하는 여행이었습니다.  언니는 유럽을 여러 번 다녀온 베테랑 여행자였습니다. 저는 그에 비해 동남아 외에는 가장 멀리 간 것이 호주였어서 모든 것이 설렘의 연속이었습니다. 공항으로 향하는 아침, 마음은 복잡하게 설레었고, 그 긴 여정의 첫날이 어떻게 흘러갈지 전혀 예상할 수 없었습니다.

스페인행 항공과 여권 사진

비행기 안에서의 15시간

인천공항에서 출발한 항공편은 오전 9시 이륙이었습니다. 좌석에 앉아 안전벨트를 매고, 작은 창으로 비행기의 날개를 바라보았습니다. 이륙하는 순간, 저도 모르게 손에 힘이 들어갔습니다. 드디어 유럽으로 향하는 비행기에 몸을 실었습니다. 처음 2~3시간은 마냥 즐거웠습니다. 스크린에 영화가 재생되고, 의자에 기대어 창밖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비현실적인 기분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현실이 다가왔습니다. 10시간이 지나자 몸이 무겁게 가라앉았습니다. 허리는 뻐근했고, 목은 점점 뻣뻣해졌습니다. 자세를 바꾸려 해도 공간은 좁았고, 잠을 자려해도 낯선 환경에 쉽게 잠들 수 없었습니다. 옆자리에 앉은 언니는 능숙하게 안대를 쓰고 잠에 들었지만, 저는 뒤척이기만 했습니다. 비행기 안의 시간은 더디고, 몸은 빠르게 지쳤습니다. ‘여행은 설렘만으로 되는 것이 아니구나’라는 생각이 그때 처음 들었습니다.

기내식보다 그리웠던 건 따뜻한 국물

장거리 비행에서는 두 번의 기내식이 제공되었습니다. 첫 번째 식사는 이륙 후 약 2시간 뒤, 두 번째 식사는 도착 2시간 전이었습니다. 메뉴는 정성껏 준비되어 있었고, 선택도 가능했습니다. 하지만 제 입맛은 이미 지쳐 있었습니다. 멀미까지는 아니었지만, 속이 더부룩하고 기내의 공기가 텁텁하게 느껴졌습니다. 그래서 첫 번째 기내식은 손도 대지 못했습니다. 두 번째 식사 때는 간단한 빵과 과일, 요거트가 나왔지만 그마저도 넘기기 어려웠습니다. 동행한 언니는 최소한의 것만 챙겨 먹고 다시 눈을 감았습니다. 저는 물 한 컵을 마신 후 조용히 식판을 덮었습니다. 이상하게도 그 순간, 국물이 그리워졌습니다. 따뜻한 된장국, 김치찌개, 혹은 그냥 라면 한 그릇. 그 어떤 고급 요리보다 지금 내 몸이 원하는 건 익숙한 온기였습니다.

바르셀로나의 밤, 신라면 한 그릇

현지 시간으로 오후 늦게, 우리는 바르셀로나 엘프라트 공항에 도착했습니다. 입국 심사는 생각보다 순조로웠고, 언니의 리드 덕분에 빠르게 숙소까지 도착할 수 있었습니다. 숙소 문을 열고 들어서자, 왠지 모르게 안도의 한숨이 나왔습니다. 침대가 보였고, 따뜻한 조명이 켜졌습니다. 짐을 풀고 신발을 벗었을 때, 드디어 여정이 시작되었다는 실감이 들었습니다. 우리는 외식 대신, 가방에 넣어온 신라면을 꺼냈습니다. 언니가 챙긴 작은 전기포트에 물을 올리고, 컵라면 두 개를 조심스럽게 열었습니다. 그 라면은 지금껏 먹어본 어떤 라면보다 맛있었습니다. 긴 비행의 피로, 배고픔, 익숙하지 않은 나라에서의 첫날이라는 감정이 국물 한 숟가락에 녹아들었습니다. 라면을 다 먹고 나서야 웃을 수 있었습니다. “진짜 유럽에 왔네”라는 말이 그제야 입에서 나왔습니다. 신라면 한 그릇은 낯선 도시에서의 첫 식사였고, 우리 여행의 진짜 시작이었습니다.

그곳에 내가 있었습니다. 영화 같은 설렘도 있었고, 몸이 무거운 현실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이 여행이었습니다. 장거리 비행은 고단하지만, 준비된 마음과 함께라면 견딜 수 있습니다. 여러분도 언젠가 바르셀로나 하늘을 비행할 때, 피곤함 속에서 신라면을 떠올리게 될지도 모릅니다. 낯선 도시의 첫날을, 따뜻한 국물 한 그릇과 함께 시작해 보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