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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없는 여행자의 포르투갈 파티마 성당 유혹기 (미사, 오르간, 개종유혹)

by urbanisy 2025. 6. 28.

2025년 3월 21일, 해가 진 후 도착한 포르투갈의 파티마 성당. 종교 없는 여행자로서 방문한 그곳은 단순한 관광지가 아니었습니다. 아름다운 건축미, 우연히 마주친 미사의 경건한 분위기, 성스러운 오르간 소리, 그리고 웅장한 성당 광장에서의 평화로움이 내 마음 깊숙이 파고들었습니다. 이 모든 것이 모여 나를 잠시 가톨릭으로 개종하고 싶다는 유혹에 빠뜨렸습니다. 종교 없이 살아온 내게 전해진 진심 어린 감동, 그 이야기를 공유합니다.

미사: 파티마 성당에서 마주한 경건한 순간

파티마 대성당의 미사모습

2025년 3월 21일, 저녁 어스름이 깔릴 무렵 파티마 성당에 도착했습니다. 해가 막 넘어가는 시간이었고, 관광객들의 발길도 줄어들고 있어 조용한 분위기 속에서 천천히 성당을 바라볼 수 있었습니다. 그 순간, 성당 안쪽에서 흘러나오는 미사 소리에 발길이 멈췄습니다. 정식으로 참석하려던 것은 아니었지만, 열린 문 사이로 보이는 신자들의 모습과 사제의 음성이 깊은 울림을 주었습니다.

내가 가진 배경은 철저히 세속적입니다. 종교를 가져본 적도 없고, 성당이라는 공간을 관광지로만 여겨왔습니다. 그런데 그날 파티마 성당에서의 미사는 이상할 정도로 차분하고, 동시에 강렬한 감정의 파도를 일으켰습니다. 언어는 알아듣지 못했지만, 분위기만으로도 전달되는 진심은 확실했습니다. 성호를 긋는 사람들, 무릎을 꿇고 기도하는 사람들, 그리고 묵묵히 앉아 있는 노인의 모습에서 어떤 확신 같은 것을 느꼈습니다.

그 미사 시간 동안 나도 자리에 앉아 조용히 호흡을 가다듬었습니다. 마치 어딘가로 안내받는 느낌, 영혼이 잠시 멈춰 선 듯한 순간이었습니다. 종교가 없던 나에게 ‘신’이란 무엇일까 생각하게 만든 첫 경험이었죠. 그 경건함은 단순한 행사나 의식이 아닌, 삶의 한 부분이라는 느낌을 주었습니다. 그날 이후, 미사라는 행위는 단지 종교적인 것만이 아니라 인간적인 본질에 닿는 길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오르간 소리: 마음을 흔드는 성스러운 음악

미사 중 가장 강하게 남은 기억은 바로 오르간 소리였습니다. 성당 천장까지 울려 퍼지는 깊고 웅장한 소리는 마치 다른 세계로 인도하는 듯한 느낌을 주었습니다. 오르간의 음 하나하나가 공기를 진동시키며 내 마음의 벽을 허무는 듯했습니다. 그날의 음악은 단순한 배경음이 아닌, 하나의 ‘기도’처럼 느껴졌습니다.

나는 음악을 좋아하지만 종교 음악은 그동안 관심 밖의 영역이었습니다. 그러나 파티마 성당에서 들은 오르간 연주는 그런 고정관념을 무너뜨리기에 충분했습니다. 음 하나하나에 담긴 깊은 감정과 신앙은, 언어를 뛰어넘어 감정을 전달해주는 또 다른 도구였습니다. 그 자리에서 눈을 감고 귀를 기울였을 때, 마치 내 내면 깊은 곳에서 무언가가 일어나는 듯한 감각을 느꼈습니다.

이후 파티마를 떠난 뒤에도 오르간 소리가 귓가에 맴돌았습니다. 어떤 음악보다 오래 남았고, 종교적이지 않았던 나에게 처음으로 ‘성스러움’이라는 단어를 선명하게 각인시켜 주었습니다. 그 웅장하고도 섬세한 선율은 단순히 귀로 듣는 음악이 아니라, 영혼을 어루만지는 소리였습니다. 사람의 마음을 울리는 음악에는 이유가 있다고 하죠. 그날 나는 그 이유를, 그리고 신앙과 음악의 연결고리를 처음으로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광장의 침묵: 종교 없는 이도 느낀 경건함

파티마 대성당 광장
파티마 대성당에는 십자가의 길(14처) 벽화

성당 내부에서의 미사와 오르간 연주가 끝나고, 나는 조용히 성당 밖으로 나와 광장에 섰습니다. 파티마 성당 앞 광장은 굉장히 넓고 시야가 트여 있어서, 시각적으로도 감정을 환기시키는 공간이었습니다. 그 넓은 공간에 수많은 순례자들이 한자리에 모였던 장면은 사진으로 본 적이 있었지만, 내가 서 있는 순간에는 단 몇 명만이 흩어져 조용히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그 침묵은 불안하거나 어색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위안이 되었고, 마음을 가라앉히는 힘이 있었습니다. 비신자였던 나는, 그 침묵에서 예상치 못한 편안함을 느꼈습니다. 아무도 나를 바라보지 않았고, 나 또한 어떤 강요도 받지 않았지만, 그 공간은 자연스럽게 나를 기도하는 자세로 이끌었습니다. 무릎을 꿇거나 손을 모으지 않아도, 그저 가만히 서 있는 것만으로도 ‘경건함’이 스며드는 장소였습니다.

광장 주변을 천천히 걷다 보니, 성당 외벽 쪽에 설치된 ‘십자가의 길(14처)’ 벽화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처음엔 그저 벽의 장식 정도로 생각했지만, 하나하나의 처를 따라 걷다 보니 그 안에 담긴 이야기가 가슴 깊이 전해졌습니다. 예수가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 언덕까지 걸었던 14개의 장면을 시각적으로 재현한 이 벽화는, 단지 종교적 상징이 아닌 인간의 고통과 헌신, 희생을 이야기하는 듯했습니다.

비록 신앙이 없었지만, 벽화 하나하나 앞에서 발걸음을 멈추게 되었습니다. 눈에 보이는 장면보다, 그 장면이 전하는 감정이 더 크게 다가왔기 때문입니다. 특히 7처에서 예수가 넘어지는 장면과 13처에서 시신이 내려지는 장면은, 종교를 넘어서 인간적인 슬픔과 공감을 불러일으켰습니다. 내가 느낀 그 감정은 ‘믿음’이라는 단어 없이도 설명 가능한 깊은 울림이었습니다.

광장 중앙의 촛불 기도대 앞에 섰을 때는 가슴이 뭉클해졌습니다. 사람들은 자신만의 이유로 촛불을 밝히고 있었고, 그 이유는 모두 다르지만 동시에 모두 같아 보였습니다. 어떤 목적이 아닌, 그저 그 공간에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감동이 전해지는 순간이었습니다. 그 침묵은 내게 말했습니다. 종교가 없어도, 믿음이 없어도, 인간은 신성한 공간에서 평화를 느낄 수 있다고. 그리고 그 평화가 때로는 종교보다 더 강한 울림이 될 수 있다고.

그날 파티마 성당은 단순한 여행지 이상의 의미를 가졌습니다. 미사의 울림, 오르간의 선율, 광장의 침묵은 종교가 없는 나에게도 분명한 메시지를 전했습니다. 순간적으로나마 카톨릭으로 개종하고 싶다는 유혹을 느꼈던 건, 아마도 그 모든 요소들이 인간 본연의 평화와 연결되었기 때문일 겁니다. 신앙은 강요가 아니라, 이렇게 스며드는 것이 아닐까요? 아직 종교를 갖진 않았지만, 그날의 경험은 내 인생에 있어 분명한 전환점이 되었습니다. 만약 누군가 종교를 고민하고 있다면, 파티마 성당을 방문해 보라고 말해주고 싶습니다.